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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의 생성 원인과 신자유주의 ★
(쉽게 설명 요약)




누군가 당신에게 검붉은 색의 아주 작은 돌조각 하나를 줍니다. 그리고
그 (작은)돌조각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한국)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한해동안 한국에서는 14,579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 했습니다.
자살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개인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건입니다.


자살자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닌 이상,

또 우리가 작가의 전지적(全知的) 시점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 지극히 개인적인 "자살"과 그 속에 고독하게 담겨있던


비극(悲劇)의 외침은 전혀 들을수도,

또 들리지도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살이 작은 돌조각으로 남아 있을 땐,


우리는 그 조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도 없지만 ...

그렇다고 굳이 알려고 애쓰지도, 또 알아야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 하지만,
그 작은 돌조각(자살)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칼끝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라면 그래서


동상의 칼 끝에서 떨어져 나온 돌조각을 다시 끼워넣게 되면,
그제서야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장엄함과 전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약 120 여년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 Durkheim)은
자신의 저서 "자살론(1897년)"에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 "현상의 생성 원인은 개별적인 사례만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원인은 개인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사건보다 더 높은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무엇이 개별적인 사례들에 단일성을 부여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 에밀 뒤르켐 - 자살론 中 >




1980년대 말부터 1997년까지 한국사회의 자살률 추이를 살펴보면

대략 (십만명당) 15~19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1998년) 사이의 자살률은 무려 25명 수준까지 치솟게 됩니다


대체 1997년에서 1998년의, 1년 남짓한 사이에 한국 사회에는 과연 무슨일이 있었기에

더불어
이러한 자살률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상당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당시 한국사회의 너무나 큰 충격과 변화를 몰고왔던
IMF 외환위기가 있었다는걸 지금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자살자가 계속해서 작은 "(검붉은)돌조각" 차원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자살자는 물론이고 그 원인 또한 개별적(개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며

설령 자살자의 유서가 발견돼



"지극히 개인적인" 자살의 원인이 쉽게 파악된다 할지라도,
그 역시 "돌조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살"이 => 자살"률"로 바뀌게 되면, 이때부터 유서는 소각되고
개인은 익명의 단위로 전환되어,

보다 거대한 집합적 힘이 개별적 자살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살의 "률(Rate)"은 "이순신 장군" 이라는 하나의 거대하고 숭고한
"완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

다시말해 익명의 단위로 전환된 '자살'이 '자살률'로 변환되고,


거기서 어떤 특이한 변동 경향이 나타난다면,

이것은 집합적(사회적) 힘이 개별 자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걸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뒤르켐(Emil Durkheim)은 개인들이 자살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 외부의 집합적(사회적) 힘을 "사회적 사실" 이라고 정의했으며

그 힘의 실체를 작은 돌조각을 맞춰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이라는

"전체"에서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83년에서 1997년까지 14년의 기간동안 자살자는 3,471명에서 6,068명 수준으로
대략 2,600명이 증가했습니다(1.74배 증가, 연평균 약 185명씩 늘어남) ... 하지만,


IMF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을 기점으로 2010년까지 13년의 기간동안의 자살자를 살펴보면
6,068명에서 15,566명으로

무려 9,500 여명이 증가했으며(2.56배 증가, 연평균 730명씩 늘어남),


이것은 1997년 이전의 비슷한 기간이었던 14년동안의 자살인구수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급격한 변동경향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습니다.


◆ [ 1983 ~ 1997 => 연평균 자살인구 185명 ]
◆ [ 1997 ~ 2010 => 연평균 자살인구 730명 ]

IMF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연평균 자살인구를 비교해 보면 [730/185 = 3.94] 입니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IMF외환위기 이후부터는 한국사회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국민들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무려 4배나 더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


 그래서 뒤르켐(Emil Durkheim)은

이러한 자살의 급격한 변동경향을

단순히 개인적 사례(돌조각)만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개인들이 자살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 외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실체(집합적 힘)를 찾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그림조각을 모아 "이순신 장군" 이라는 비로서 완성된 전체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IMF외환위기가 한국사회에서 거대한 집합적 힘으로 작용했다는 나름의 추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뒤르켐(Emil Durkheim)은 개인들의 자살(돌조각)과 자살(돌조각)에서
"관계"를 찾아내고, 그 관계에서 이순신 장군,

즉! 거대한 모습으로 자살자(개인)를 내려다보는


"사회적 힘" 을 발견하려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유독 심각해진 부의 편중 및 양극화에 대해서도
우리는 뒤르켐의 이론을 빌려와 나름의 추론을 해볼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네오리버럴리즘(Neoliberalism)" 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 이라며 열심히 노력할것을

주문하는 부자들은 모순되게도 일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평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꿈꾸는 소시민들은 모순되게도
"(노후에)노동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압박합니다

대표적인 희생목록에
‘노동’은 언제나 영순위입니다.

기업이 아무런 간섭없이 자유롭게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면


노동 따위는 성장을 위해 애쓰는 기업을 절대로 귀찮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희생을

신자유주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이라는

그들 수준에서 매우 품격(?)있는 조어(造語)로 바꾸어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광을 냅니다.

더불어 이와함께 수반되는 실업과 복지축소같은 문제들은
오직 "성장" 이라는 벡터(vector)적 기호속으로 몰아넣고 감금시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렇다면 국가와 기업이 성장과 이윤을 남기는 동안에 정말로 노동이 희생되었을까 궁금해 집니다.

▶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1970년 부터 2010년 까지의 미국의 GDP 규모는
대략 1조 800억달러($) 수준에서 15조 달러($)로 대략 14배 커졌지만


같은기간 제조업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3.93달러($)에서 26.44달러($)로 대략 6.7배 증가했을 뿐입니다

다시말해


2010년 미국의 기업들은 1970년에 비해 상품을 14배 더 많이 생산했지만,

그 상품을 만든 노동자들은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대부분의 국민들을 국민이 아닌 바로

"소비자[Consumer]"로 둔갑 시켰습니다.
민주주의의 시민의식과 사회참여 의지는


신용카드와 소비주권으로 대체됐고 ... 무엇보다도
10년, 20년을 너끈히 사용할수 있는 노트북과

휴대폰, 청소기, TV 같은 다양한 상품들은


소위 기업들의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에 의해서
(조금 과장하여)1~2년내에 버려져야할 신세가 되면서

신자유주의에서 살아가는 "컨슈머(Consumer)"들의


소비속도(주기)는 점점더 가속화 되었습니다.

[ ◆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

의도적으로 제품의 물리적 수명 자체를 단축시키거나,


단순히 부품만 교환해도 되는 상황을

제품 자체를 아예 새것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기업들의


"계획된 제품 사용수명 단축전략"을 뜻합니다. 또한,

특별한 기능혁신 없이 시리즈 형태의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멀쩡한 기존 제품이

마치 낡거나 유행에 뒤처진 듯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심리적)진부화 전략도 포함합니다. - 갤럭시S ... 5,6,7]

이렇듯 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이윤의 증가는 노동자,

소비자들의 암묵적인 희생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이 과정에서 계획적 진부화 같은 기업들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은 부의 편중과 빈곤 생산시스템을
상당히 정교하게 구조화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특히 신자유주의 아래에서의
자본주의는 그 어느누구도 감히 시스템의 작동방식의

오류나 더 나은 시스템의 개선 여지를 건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수십억 인구의 경제행위로 고착화된 시스템인데

이런 견고한 작동방식을 함부로 규정 짓는다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나약하고 빈곤한 집단들의 분노섞인 외침이

최근에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걸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수는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부의 편중같은 오늘날의 현상의 생성 원인을
뒤르켐이 주장한대로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되며,

집합적 힘의 21세기 버전인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수도 있다는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철학자 미셸 푸코(Foucault)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필두로 맬서스(Malthus), 리카도(Ricardo),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고전자유주의 경제학파에서는 인간의 경제활동의

근간을 바로 "교환(Exchange)" 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한다고 합니다.


또한 애덤스미스(Adam Smith)는 "교환, 교역" 등을 인간의 본성적이고

자연적인 행위로 생각했기 때문에

"시장"도 어떤 국가나 사회제도가 아닌 하나의 자연적인 체계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신자유주의"에서는
교환이 아닌 "경쟁(concurrence/competition)"을 전면에 내세운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다시말해 고전자유주의에서는


"교환(Exchange)"이 경제의 근간이면서 동시에 경제주체들의
관계망 속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신자유주의에서는 자연적인 의미로서의 교환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 대신 신자유주의는 "경쟁"의 관점에서 경제를 포함한

그 이상을 바라보게 하는데 ...


특히 이러한 "경쟁"은 경제주체들의 자연스런 교환행위와는 달리
상당히 인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 실질적으로 과거 물물교환이나 화폐가 개입된 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교환’의 경제에서는
각 경제주체들의 필요(수요.공급)에 의해 거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것이 만약 "경쟁"의 양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된다면 이후부터는


이윤과 점유율 및 매출을 늘리기 위한 가격 조정이나,

앞서 언급한 기업들의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같은

인위적인 성격의 경제로 변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푸코(Foucault)가 바라본 신자유주의는

경제활동의 근간의 자리에서 "교환"을 끄집어냄과 동시에
"경쟁"을 삽입 합니다 ...


더불어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독점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것은 물론이며
(국가가 개입해서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경쟁’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 경쟁을 보호하고 또 확장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최소화 요구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도 "시장" 이라는 틀 안에서 경쟁이 제대로 작동 될 수 있도록


시장에 방해가 되는 여러요소(ex 규제,노동 등)들을 제거해 달라는 요구가 우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제에 대한 토대가 "경쟁"으로 바뀐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국가 및 자본)권력이 "경쟁"을


인위적인 하나의 "통치술"로 사용하여 시장을 보호하고 (경쟁의)기능을 최적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 "경제학은 모든 목적 그리고 양자택일적 용도를 지닌 희소한 여러 수단들 사이의 관계로서
인간의 행동양식에 관한 과학이다" - 게리 베커[Gary Becker / 시카고학파 미국경제학자]

인간의 경제활동과 삶의 근본이 교환에서 ‘경쟁’으로 바뀌게 되면, 이제 우리사회 전반에는
상당히 복잡 미묘한 주체화 담론이 생성되게 됩니다 .

먼저 푸코는 시카고학파 게리 베커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신자유주의 관점에 매몰되면 ...

그 순간부터는 ‘경제학’의 범위가 무한정으로 확장된다고 주장합니다
푸코가 인용한 게리 베커의 주장은 ‘인적자본’에 관한 부분인데


예를들어, 대리운전 일을 하고있던 사람이
오늘 가족들과 온천여행을 떠나려다,

그냥 평소때처럼 대리운전영업을 선택했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전략에 따른 결정일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자신의 목적달성(가족온천여행, 대리운전-소득증대)을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 같은 한정된 희소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서 사용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희소자원(시간과 에너지)을 대리운전에 사용했다면,
그날 하루 수입으로 나름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해볼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가족온천여행에 자원을 사용(투자)했다면


비용(여행경비) 측면에서는 계산이 가능 하겠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순수한 의미의 경제적 가치측정은 어려울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가족과 함께한 여행으로 육체피로 해소는


물론 가족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어서,
그날 이후부터는 대리운전 업무에 상당한 즐거움과 자신감을 얻었으며,

진정한 일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무엇보다 가족들의 응원이 심리적 안정과 만족으로

이어져 동료들보다 소득이 두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면 ...

이것은 곧 능력(인적자본)이 상승한 것이며,


또한 능률향상(소득증가)은 가족여행과 유무형으로 상관관계가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유무형의 비경제적 영역은 인적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투자’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경제의 분석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대리운전이든,

가족온천여행이든 무엇을 선택하든지(경제적영역 or 비경제적영역)
목적달성을 위한 주체의 (합리적)행동은


결국 경제활동의 일부라고 평가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게리 베커의 경제학의 정의는

노동자(운전자)가 자신이 자유롭게 이용할수 있는 희소자원(시간, 에너지 등)을


과연 어떻게 사용하는가(가족여행, 대리운전)... 와 같은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전략에 관한 분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푸코는 노동자(인간)가


노동을 통해 얻게되는 소득을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일종의 투자수입으로 간주할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즉, 시간이나 에너지 같은 희소자원 뿐만 아니라


운전 능력이나 제빵기술, 차량정비기술, 통역 등

각각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신만의 ‘능력’은
일종에 ‘자본’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인적능력 = 자본)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일정한 시간만큼 판매한 것이라 얘기했지만,


신자유주의 관점에서는 노동자의 노동능력은

하나의 자본으로서 투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여기서(인적자본) 말하는 투자의 의미는 앞서 얘기했듯이


대리운전 수입 같은 순수한 경제적 영역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온천여행으로 인하여 파급되는 비경제적 영역도
모두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


예컨대 신입사원(노동자)이 회사에서

일하고 첫 월급을 받았다면,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라 생각하겠지만


푸코의 시선에서 신자유주의적 관점(인적자본)으로
바라본다면 신입사원이 자신의 능력자본(노동력)을

투자하고 얻은 일종의 "(초기)투자수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적자본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경제영역이 경제 및

비경제적 영역을 모두 포함하여 무한정으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CEO]의 입장에서는

회사를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게 하려면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


물론 투자에 대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수도 있겠고,
심지어는 실패할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실패를 예상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경영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며


혹시나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신중하고 합리적인 투자를 선택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에서 살아가는


모든 경제주체들 또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자기개발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주체(개인)들은 소위 "경영자[CEO] 마인드"로
자신의 자본(인적자본,능력자본)을 합리적으로 투자하여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 여기서 ‘투자’에 대한 개념은
앞에서 살펴본 대리운전자처럼 그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대리운전, 온천여행)이 바로 지금보다 더 경쟁력있는

대리운전자가 되기위한 하나의 ‘투자’로 간주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온천여행 뿐만 아니라


영화관람, 미용, 마트에서 장보기, 요리학원, 등산, 동호회 활동,
독서토론모임, 하프마라톤 참가, 공원산책, 스포츠관람 등등 ...

그동안 우리에게는 너무나 평범했던


‘비경제적 영역의 모든 일상(경제영역 당연포함)’들이

‘투자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푸코의 생각이며
결론적으로 이것은 곧 주체(인간)들의


삶의 모든 활동들이 일종의 ‘투자(능력자본 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는 곧바로 시장에 노출되어 "경쟁"이라는 기초위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투자)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체들(개인)은 각 개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기업(기업가,CEO)"이며,

주체들(개인들)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도 모두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주체들(개인)

각자가 모두 하나의 기업가[CEO]라고 푸코는 생각했으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푸코의


"자기경영인(Entrepreneur de lui-mme)" 사고인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제 개인들은 모두 하나의 기업이며,

기업가[CEO]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의


간섭없이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투자(본인을 투자, 본인의 능력자본)를 해야하며

이러한 모든 행위들에 대한 결과도


당연히 주체(개인)들 본인들이 책임을 져야하는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국가 및 자본) 권력에게는 책임을 물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리운전자는 이제 하나의 기업이며,



동시에 기업가[CEO] 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본[능력자본: 운전능력, 시간, 에너지 등]을

삶의 모든 영역에 투자하고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더 뛰어난 대리운전자로 인정받아야 합니다(마치 기업이 성장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러한 과정속에서 만약 고혈압(질병)으로 쓰러지거나


예상치 못한 회사사정으로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더라도
모든 상황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대리운전자는 기업가[CEO]로서


~ 즉, 푸코식으로 표현 한다면 이제는
‘자기경영인(Entrepreneur de lui-mme)’이 되었으므로

자신의 모든 행동들은 곧,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결과일 뿐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쟁의 기초위에서 이루어지는 "시장원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자신을 항상 엄하고 신중하게 "통제(관리, 매니지먼트)" 해야 합니다


보통의 기업들이
자본을 아무렇게나 투자하지 않는 것처럼, 개인(주체)들도

본인들 자체가 바로 하나의 ‘자본(능력자본)’ 이므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신자유주의에서 살아가는 모든 주체(개인)들은 이제

" ▶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는 존재 " 가 되었으므로 ...
돈을 버는것과, 능력(교육)을 키우고, 건강(의료)을 유지하는것, 직장(고용)을 구하고,
노후(복지)를 준비하는것


그리고 가난(빈곤)해지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주체들(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챙기고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가난해 질수밖에 없는" 혹은 "더 많은 부를 쌓게 되는"


수많은 국가들의 부의 편중과 양극화 문제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출몰하였다면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국민)의 게으름이나 능력부족에서


찾아야 하는것이 아니라

"영미식 신자유주의" 라는 거대한 집합적 힘의 작용이 아닌가
한 번쯤은 의심의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ps. 물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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