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시골의 어느 공원 묘지에 묻혔다.
이듬해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그 근처의 친척집엘 갔다.
우리가 탄 차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는 묘지 입구를 지나갈 때였다.
할아버지와 나는 뒷좌석에 함께 앉아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아무도 안보는 줄 아셨는지
창문에 얼굴을 대시고 우리들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손을 흔드셨다.
그때 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깨달았다.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이정하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폐허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인간의 폐허야말로 그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본다.
아무도 자신의 폐허에 타자가 다녀가길 원치않는다.
이따금 예외가 있으니 사랑하는 자만이
상대방의 폐허를 들여다 볼 뿐이다.
그 폐허를 엿본 대가는 얼마나 큰가
무턱대고 함께 있어야 하거나 보호자가 되어야 하거나
때로는 치유해줘야 하거나 함께 죽어야 한다.
나의 폐허를 본 타자가 달아나면 그 자리에 깊은 상처가 남는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하나가 되었던
그 일치감의 대가로 상처가 남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늘, 신경숙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이 별의 일, 심보선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다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라고 내가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그래서, 김소연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던 한 사내는
수국 가득 핀 길가에서 한 처녀와 마주치는 순간
딱, 하고 마음에 불꽃이 일었음을 느꼈다.
사랑이었다.
부싯돌, 서덕준
결말이 따뜻한 한편의 소설 속
너와 내가 주인공이길 바랐지만
너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일생을 읽는 동안
나는 등장하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지문에 눈물만 묻혀가며
말 없이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다.
소설속 나의 이름은 고작
'너를 앓으며 사랑했던 소년1' 이었다.
등장인물, 서덕준
얼마나 다행인가요,
불면이 무덤 속까지는 가지 못한다는 것이.
(잠들지 못하는 영혼, 그것은 산 자의 것이죠.)
시인의 묘, 황인숙
사람은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초벌그림>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였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미래의 일까지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할수록,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싫어할수록,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며 오래 후회하는 완벽주의자들일수록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는 겁쟁이들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희경
네게는 찰나였을 뿐인데
나는 여생을 연신 콜록대며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환절기, 서덕준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만큼 사라져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봄이면 제 영혼을 조금씩 조금씩 털다가 사라져버리는 나비처럼.
우주로 날아가는 방2, 김경주
그러나 당신만은, 내내 손해보고 지더라도,
그 때문에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 상처투성이의 몸을 핥아야해도,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해줄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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